만일 누군가 오늘 너의 인생을 도둑질하려 한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또한 물건을 훔쳐 간 사람보다 도둑 맞은 사람이 더 나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반어적인 표현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대 부분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어버린 후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므로 물건을 잃어버린 그 자체보다 결과 적으론 관리를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사회 현실을 보면 마음이 찹찹해지고 낙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니 정말 가슴아픈 현실들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을 너무 믿고 신뢰했는데 진작 그에게 돌아온 것은 일종의 배신감과 모멸감일 때 우리는 그러한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요즘 우리 사회에 무수히 많이 일어나는 대형 사고들,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안일함과 안전 불감증이 만들어낸 결과의 산물이 아닌가. 결코 아름다운 열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의 추한 모습이 아닐까?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왜 미리미리 대비하지 못했는냐 하는 아우성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이러한 병폐들을 쉽게 고쳐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에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그러한 사실조차 느낄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은 자기의 내면에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우리 스스로가 귀기울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손과 발 온몸의 기능은 뇌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뇌의 지시에 자기 의사와 다르게 따르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켜 신체의 장애라 한다면, 양심의 가리킴에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장애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자기에게 들려오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하물며 서로가 서로의 소리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우린 너무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소홀히 할 때,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무관심 할 때 홀연히 우리 곁에 찾아오는 것은 우리가 결코 반기는 그러한 대상이 아니리라 오늘날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도적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을 때 과연 우리는 누구를 탓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인생이 더럽혀 지도록 방치해 놓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최고의 적은 바로 자만심과 인생에 있어서 직접 참여자가 아닌 간접 참여자 곧 방관적인 태도와 게으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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