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가슴 한 곁에 드리우고 픈 사연

잉글랜드 김 2009. 4. 6. 19:27


    가슴 한 곁에 드리우고 픈 사연      


어느 해인가  추수가 끝나는 가을 무렵 위암 말기라는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그 다음해에 모내기 할 무렵 눈을 감으셨던 어머니, 평소에 잘 다니셨던, 아니 살아 생전에 늘 다니셨던 길가 감나무 밭 어귀에 그렇게 묻히셨는데 나는 어머니가 묻히신 그 산소 곁에 갈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안나오신 어머니, 어릴 적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잃으시고 일찍 고아가 되셔 학교 문턱엔 가보지도 않으셨던 어머니 그러나 평소에 자식들 앞에서는 당당함을 보이시던 어머니, 어깨너머로 국문을 깨우치시고, 셈을 깨우쳤던 어머니 그러하기에 슬하의 자녀들 교육에는 남달리 애정이 많으셨던 어머니,   ........“ ”, 그러나 나는 공부도 하기 싫고 하루걸러 한번쯤 일어나는 가정 불화에 반항만 하고 있었다.


이제 세월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언제나 나의  홀로 서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 여러 해 객지를 떠돌다가 내가 살던 고향과 다른 곳에 머물러 예전의 나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되는 것은 내가 그 만큼 가정의 소중함을 알아서 인가? 한때는 자식들을 버리고 제혼 하신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 괴로웠던 일 그러나 이젠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 무거웠던 짐을 이젠 다 벗었다고 생각하니 한결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내 스스로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문제는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나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느껴질 때의 나의 절망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반항심으로 성경책을 찢고 불살랐던 일, 그러나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며 내가 걷던 길을 똑같이 밟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은 내 가슴이 상심한 채 멍이 든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 때문에 결코 자신을 돌보지 않는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증오심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것의 내면 속에는  끝없는 자신의 학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포기이기 때문에 더욱 나의 가슴은 절망하듯이 숨이 가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 밖에 안 나왔다는 한 형제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가 미워 사고만 치고 반항아로 지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 자신은 비단같이 빛이 나는 옷을 입었는데 비참하도록 헐벗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물으니 비록 아버지는 자신을 잘 가르치지 못 하였지만 부모의 심정이란 자신이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자식만은 그렇게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라고, 꿈속에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아버지의 음성이었다고 그로부터 그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노라고 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 인이 되어 어느 교회의 집사로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슴에 묻고 싶은 소중한 사연은 단지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뜻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닌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픈 양 삶을 저울질하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이 깊어 가는 초겨울의 문턱에서 잠시 가슴 한 곁에 드러내고 픈 이야기를 끄집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