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세워야할 역사관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과정과 같다.
원래 나는 드라마를 좋아 하지는 않지만 사극에 대해서는 예외인 편이다.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태조 왕 건을 요즘에 유 튜브 채널을 통해서 다시 보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왕 건이라는 역사 사극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의 매 주일 마다 그 시간을 기다려왔고 심지어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나는 가끔 역사라는 시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색깔론 을 제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왜냐하면 역사의식은 고정된 관념 속의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란 벽에 걸려 있는 사진처럼 고정되어 있다면, 혹은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책처럼 놓아져 있다면 역사는 단지 먼지 속에 묻혀 버릴 수밖에 없는 슬픔을 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잠자고 있는 역사를 통해서 우린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라는 사건에 대해서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도 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 가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사명이라 여겨진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사건들을 그리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 애굽의 노예로 있었던 시절을 잊지 말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에서 얻어진 교훈들을 자손대대로 잊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그것은 과거의 아픈 부분 실패한 부분들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실패한 부분들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고 그 부분들을 아예 잊기를 바란다. 역사에 대한 바른 교훈은 바로 잃어 버렸던 과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마치 기억 상실증에 걸린 우리 현대인의 자화상과 같이 우리의 과거를 잊고 산다면 우린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없고 계속 그 아픔을 되풀이 하면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아픔을 또 다시 되돌리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과거의 아픔을 숨기기보다 드러내놓고 치료하자는 이야기인 것이다. 지금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보아도, 안타까운 것은 몇 사람의 그릇된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경제의 파탄과 함께 국가적인 위기로 까지 번지고 있다.
과거의 우리는 어려웠던 수많은 위기들을 극복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민족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보면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고생했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서 또 다시 과거의 안 좋았던 습관들을 놓지 못하는 무감각한 우리의 모습들을 보면서 삼국 시대의 역사나 고대의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하기 때문에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한다는 것은 역사를 바르게 하고 앞으로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도 바르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최근에 국민의 의견도 없이 독단적으로 합의한 위안부 문제와 중국의 동북 공정을 비롯한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왜곡을 보면서 한편으론 우리가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책임도 느껴지지만 때로는 그들의 내면의 열등감을 엿볼 수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자신들의 역사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는 것 과 과대 포장하는 모습은 자신들의 열등감을 표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재인식하고 바로 세운다는 것은 그 시대의 메시지가 오늘날 나에게 우리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들을 수 있는 자세와 들으려고 귀 기울이는 노력과 같다. 또한 역사에 대해서 단지 머리 속에든 단순한 지식에 그치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아는 것이 참다운 지식이라고 여겨진다. 다음에 인용하고 있는 글과 함께 슬픈 궁예의 모습과 무엇 때문에 궁예가 슬퍼해야 하는지 느껴보고 싶다.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왕 건이라는 한 인물을 내세우기 위해서 억지로 궁예를 죽이기처럼 보여 지는 짜 맞추기 형식이 많이 보였었다. 역사에서는 왕건을 미화해서 등장시키고 궁예를 미치광이로 그리는 것은 그것은 왕건은 역모 명분을 세우려 궁예의 포악함을 부각시켜서 궁예를 역사 속에 사라지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예전에 슬픈 궁예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저자 이제 범의 궁예를 연구한 의도는 어디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왜 그는 궁예를 연구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저자는 “한 외국인이 왕건, 견훤, 궁예를 마카로니 서부영화에 비유해서 쓴 논문을 읽고 나서 한 민족의 전통적 역사관이 조롱당한 느낌에 불쾌하기도 했지만 ‘이긴 자 중심의 역사서술’의 문제점에 공감하며 궁예를 재해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궁예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 저자는 직접 궁예에 관한 전설을 모으고 관련이 있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얻은 결과들을 정리했다. 궁예와 관련이 있는 철원 지역을 답사하고 인근의 지명이 궁예와 어떻게 연결되어 생겨났는지, 그리고 《고려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등에 등장하는 변조, 탈색된 궁예의 모습, 궁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쓴 단재 신채호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궁예는 어떤 사람일까. 저자는 “궁예는 골품제를 부인하고 능력 위주의 관료체계를 구축하려 했고, 국제사회의 리더로 나서려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예가 자신을 '미륵불'로 칭한 것은 불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하면서 가톨릭에서 독립해 성공회를 만든 영국의 헨리8세에 비유했다.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최고의 존재로 왕, 미륵이 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럼 궁예는 미륵 사상의 신봉자였을까? “궁예의 사상이 미륵 사상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불가에서 말하는 미륵사상과는 구분된다. 궁예는 정통적 불교 교리를 따르기보다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20여권의 경전을 지었다는데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승려를 죽이기도 했다.” 궁예가 자신을 미륵불로, 자신의 아들을 보살이라고 칭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궁예 이전의 왕으로 자신을 부처와 동일시하고 자신의 가계를 부처와 연결해 신성시한 경우가 있었고 그런 행위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진흥왕, 진평왕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승려를 죽인 것도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대립세력을 억압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정치적이긴 했지만 정말 스스로 미륵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신라의 모순을 극복하고 이상세계 구현을 바랬을 테니까.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인 통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자신의 사명을 가장 잘 실천했던 인물의 하나가 궁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궁예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와 의미를 얘기했다. 후삼국 시대에서 왕건이 궁극적으로 승자가 됐지만 견훤이나 궁예가 그 들러리로 여겨져서는 안 되고 한 시대를 이끈 동반자로 자리 매김 하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이 후대에 있어서 궁예에 대한 평가는 진실함을 해석되기보다는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다는 설이 풍부하다. 그리고 이 역사에 대한 평가가 학자들마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에 대한 해석에는 정경과 외경이 있는데 정경이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모든 자료나 과학적으로 입증된 자료에 의해서 입증되어 사실로 받아들여진 부분을 가리켜서 정경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외경이라는 것은 구전되어온 설화나 전설을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처럼 한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확증하고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적용되어지는 부분이 없다면 그것을 찬란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환단고기 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궁예가 슬퍼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은 궁예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꿈이라는 것은 그 삶이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고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의 원동력 칠전팔기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꿈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생명이 없는 삶과 동일하다. 꿈이 있으므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고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의 온 생애를 바쳤던 궁예의 꿈은 한낮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라는 속담을 무색케 하는 그의 전 생애를 바친 그의 모든 이루어 놓았던 꿈은 그렇게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궁예에 대해서 스치는 한 가지 일을 생각해 보면 인과응보 적인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한 사실 물론 그가 불교를 정치적인 입장에서 이용하긴 했지만 인과응보란 불교적인 하나의 사상이라는 생각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씨는 뿌린 데로 거두듯이 그 옛날 양길 에게 의탁했던 궁예가 자신의 주인을 배반하고 자신의 주인이 세웠던 영토를 빼앗았듯이 궁예도 자신의 부하였던 왕건에게 자신의 자릴 내 주어야 했던 그 아픔이 오죽 했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궁예의 슬픔은 오늘 날 먼지 속에 쌓여있는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 그것이 가장 큰 슬픔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T. V속의 매체나 왜곡된 사실을 그리고 있는 또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고정 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궁예는 벽에 걸린 죽은 그림자처럼 그렇게 먼지로 쌓여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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