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28절-30절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나 있을 수 도 있을 법한 일이며 우리가 때로는 차를 타고서 어딘가를 다녀온다던가 혹은 여행을 하다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 있는데 교통의 소통이 원할하지 않는 이유들 중에 어떠한 한 부분은 어떤 현장에서 예기치 못할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 그 부분의 상황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보다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것을 구경하기 때문에 원할 해야 할 구간이 정체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소통이 원할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 절실하기 보다는 상황을 좀더 지켜보고 상황에 따라 일을 결정해야겠다는 방관적인 자세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방관하는 일은 일을 추진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많은 걸림돌로 작용 하기도 합니다. 마치 도로 위를 달리는 많은 차들이 몇몇의 구경꾼들로 인하여 목적지로 향하여 가는 과정이 더뎌지고 답답함을 느껴지게 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삶의 가치는 구경꾼 이기보다는 일꾼으로서의 삶이 더욱 가치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방관하는 삶은 무엇 입니까 방관하는 삶이란 곧 불신앙의 모습 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불 신앙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모습 이기도 합니다. 불신앙의 모습 이란 하나님 앞에 불 순종하는 삶의 모습이요 우리의 믿음의 척도를 알려주는 기준이기도 한 것 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불 신앙의 모습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임하셨고 요한 복음 3장 16절에서는 이르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 씀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죄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이 분명 하지만 우리가 가진 죄의 속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여전히 죄와 싸워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보내셔서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도록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곧 죄에 대한 각성 회개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므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죄에 대한 해결을 할 수 있는 도움을 주십니다. 또한 죄에 대한 회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 본래의 죄 성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나 우리는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와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늘 이해하고 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죄는 모든 죄에서 자유 함을 누리면서 살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지 못할 죄란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죄가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의 모습 입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는 회개할 기회 조차도 스스로 거부하는 자의 모습 입니다. 교만한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의를 드러내야만 하기 때문에 남의 잘되는 모습을 용납할 줄 모르는 자 입니다. 성경에서는 교만한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 한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요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 합니다. 성경은 여러 부분에서 교만한 자가 훼방자의 모습으로 비춰 지기도 합니다. 훼방 자가 훼방하는 일에 열심을 다 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서라도 자신을 나타내고 돋보이게 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행위로 드러나는 것 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6장 32절을 통하여 성경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부름을 받았으나 자기 자아의 도취로 인하여 모세를 훼방하는 당을 만들고 대적 하다가 용서 받지 못한 채 멸망 받은 고라의 무리들을 거울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라와 그를 따르는 250명의 무리들은 모세를 대적하고 훼방 하다가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켰고 제단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살랐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신약에서 또 다른 사람 , 가룟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 가까이에서 그를 따르며 그의 사역을 목격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배도하는 자의 자리에서 서 있어 그가 회개할 기회 조차 얻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성령의 훼방 죄가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예를 성경이 증거 합니다.
성경은 또한 누구든지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의 가장 큰 목적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나타내기 위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비방은 단순히 그 행위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즉 귀신 축출 사역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예수님 전재 자체에 대한 거부 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거부하면 누구든지 죄의 용서를 받을 길 이 없습니다.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할 분은 오직 예수님 뿐 입니다. 또한 성령이 하시는 주된 역할은 예수를 믿게 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훼방하는 것은 결국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것이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예수 전파 사역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 합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자기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가리켜 영원히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죄라고 한 것 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과 함께 공관 복음에 함께 기록한 동일한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강조하고 계신 말씀의 의미를 더욱 되세 길 수 있도록 하기를 원 합니다.
막 3:28-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마태복음 12장 31-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눅 12장 8-10절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 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 함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위에 말씀들을 통해서 제시하고 강조하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렇다면 성령에 대한 훼방 죄의 의미가 여러 분에게는 어떠한 모습으로 받아들여 지십니까? 이 시간 여러 분 각자의 심령에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훼방 죄에 해당하는 가장 큰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 가운데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의 모습 입니다. 진정으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 인이라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 인으로 서의 모습 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도 때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지 않는 경우들을 목격할 수도 있으나 그들을 향해서 성령를 대적 했거나 모독 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역약함을 인정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잠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산다고 해도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는 자들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다가 하나님의 약속된 기업을 얻지 못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돌아 오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 그들은 반드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 하셔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들에게도 때때로 죄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주님을 알기 전부터 있었던 불 신앙의 모습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도 사도 행전 7장 51절 이하에서 와 같이 성령을 거스리는 자로서의 과거의 삶이 있었지만 그 죄는 단지 우리의 의지가 없어서 범죄하는 것 일 수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기회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커다란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형벌은 다르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매우 고통 스러운 것이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것 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이러한 대가를 치를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많은 속이는 자들은 이러한 고통을 숨기려 합니다. 때로는 이렇게 속이는 자의 모습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위장 합니다. 이러한 뻔뻔함은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까지 더러운 곳으로 끌고 다니며 용서 받을 수 없는 자, 저주 받은 자로서 살도록,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추악한 모습은 뜨거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 나방과 같은 마치 이 땅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수 많은 영혼들을 유린하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지옥의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탄의 모습과 아주 흡사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막 3:22 절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의 모습은 서기관 들처럼 말씀을 잘 알고 그 능력의 근원을 알면서도 자신과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집요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함부로 폄하하는 자들 입니다.
히6:6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맛보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자들 입니다.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자들을 말 합니다. 즉 이들을 통틀어서 살펴 볼 수 있는 자들은 오늘날 진리이신 하나님 편에 서야 할 지도자들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이 w.c.c 와 같은 비 진리와 타협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망의 구덩이에 빠지게 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의와의 타협은 곧 영원히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고라 ,가룟 유다의 반열에 놓인 배도자의 모습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진리를 체험 했던 자들 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님의 진리를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끝까지 변절 하지 않고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소원 합니다.
또한 이렇게 기도 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주어진 영혼들을 향해 절박한 심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으로 맡겨진 영혼들을 위하여 때로는 절망하며 가슴을 치며 부르짖어 간곡하게 기도하길 소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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