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속죄
본문: 요한 복음 10장 11-12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언제나 제한 받지 않으시는 존재 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서는 하나님은 항상 그 사랑이 변함이 없으시고 무한하시다는 것 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자신을 비워서 제한 받는 존재인 육체를 스스로 입으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육체를 입으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는데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범죄하여 죽게 된 인간을 구속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으셨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반드시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으셔야 만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이루시고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버리사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이들의 대속 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0장11절 에서 18절에 있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러한 의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는 인간의 무능력함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구원의 방법은 근원적으로 차단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의 결과로서 인간은 영원한 형벌과 함께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이었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선택을 통하여 허물과 죄로 철저히 죽어버린 인간이 다시 구원의 길에 올라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화목과 교통의 길을 새롭게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는 구원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의 전제 조건 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죄로 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선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은 구원의 사전 단계로서 그 성격이 죄로 부터의 구원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선택이 유효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그 죄를 대신 갚아주시는 대속 또는 구속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때 베푸시는 하나님의 속죄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받은 특정인들에게 선별적으로 적용된다는 것 입니다.
성경은 여러 부분에 걸쳐서 속죄하는 범위가 제한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제시되는 각각의 말씀들은 제한 속죄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는 말씀들 입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마1:21)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이시니 (롬8:33)
너희가 내양이 아님으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요 10장 2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라 (요3장16절)
그러므로 칼빈주의 자들이 속죄교리를 제시하면서 특별히 제한속죄라 표현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해서 대속적인 죽음을 담당 하셨느냐에 대한 문제 제기가 따름 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만 구원이 있다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싶습니다. 즉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이 증거 되었을 때 어떤 한 부류는 믿음으로 반응이 이루어져 구원에 이르기도 하지만 어떤 한 부류는 평생이 다 가도록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기독교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의미 합니다.
요한 복음 10장 9절에서와 같이 주님은 자신이 곧 양의 문이니 , 라고 강조 하신 이유 또한 제한 속죄에 대한 설명과 다르지 않으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양의 우리가 아닌 문 밖에 있는 자들과는 아무런 상 관이 없는 자 임을 예수님 스스로 증거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심판 앞에 놓인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범죄와 함께 타락해 절대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죄의 결과로서 오직 죽음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구원자가 필요했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목적은 오직 하나 예수님을 통한 인류에 구원을 이루는 것이 목적 이었습니다.
그러므로요 3장 18절 말씀에서는 저를 믿는 자에게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하여 강조하고 부각 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 은혜의 깊이를 말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또한 예수님의 구원은 보편적인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결과 인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없는 인류는 어떠한 것으로도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어떤 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즉 예수가 없는 모든 인생은 죄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고 예수가 없는 삶은 하나님과 분리된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에 반하여 알미니안 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속죄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 했다는 주장은 인간 편에서 인간이 원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이루어 집니다
만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수포로 돌아간 부분이 있다면 인간이 하나님보다 강한 존재로 부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칼빈주의는 이것을 용납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인간보다도 못한 하나님이라면 알미니안 주의자들 까지도 그런 하나님은 믿어야 할 이유와 필요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알미니안 주의에서 그렇게 고집을 하는 이유는 역사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인 나를 역사의 주체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창세 이래로 인간은 무수히 많은 선악과를 훔치고 또한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과 같아 지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듯이 알미니안주의의「만인 속죄설」은 그 근거와 장래가 희박하여 결국은 이단자의 악평을 피할 길이 없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제한속죄는 절대로 억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한되었다는 특별의식 때문에 더욱 감사가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무리 중에 나 같은 죄인을 특별히 선택하시고 또한 나를 위해 죽어주셨다고 생각할 때 성도는 더할 나위 없는 감격에 사무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인 구원 설을 분석해보면 스스로의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서 만인의 구원이라고 한다면 무슨 감격이 있으며 믿음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구태여 의롭게 살려고 발버둥 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만히만 있어도 구원될 것 처럼 보여지는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류 이기 때문 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정말 가슴에 안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고 혹은 가르쳐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상자에게 품게 해야 할 세계관, 즉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품게 해야 할 것 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온 세상이 혼탁해 진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주신 진리는 끝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종교이며,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모든 것의 정점 위에 있습니다. 달리 말한다면 하나님이 계시기에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인간이 있기에 하나님이 계신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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